삶의 단상2011. 9. 3. 06:34
삶의 단상2011. 8. 14. 13:59
삶의 단상2011. 8. 4. 19:12
삶의 단상2011. 8. 4. 19:11
삶의 단상2011. 8. 4. 19:11
문화와 예술에서 복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아전인수와 다른 점이 있는가?
독자반응비평에 가까움. 본문과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만약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픔에서도 복음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해석인가?
비신자를 위한 접촉점으로 용인되는 수준에서 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경만 교리만 종교적 영역만 다루는 것은 폭이 좁아보인다.
인간성을 완전히 배제한 복음은 적합성을 놓쳐버릴 것이다.
사실 성육신한 복음 자체에 인간성이 담겨있다.
성경적 세계관의 틀을 확립하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는 수밖에..
그렇게 가다보면 신비한 접촉점이 있으리라.
그것이 아전인수와 다른 점이 있는가?
독자반응비평에 가까움. 본문과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만약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픔에서도 복음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해석인가?
비신자를 위한 접촉점으로 용인되는 수준에서 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경만 교리만 종교적 영역만 다루는 것은 폭이 좁아보인다.
인간성을 완전히 배제한 복음은 적합성을 놓쳐버릴 것이다.
사실 성육신한 복음 자체에 인간성이 담겨있다.
성경적 세계관의 틀을 확립하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는 수밖에..
그렇게 가다보면 신비한 접촉점이 있으리라.
삶의 단상2011. 8. 4. 19:11
삶의 단상2011. 8. 4. 19:11
삶의 단상2011. 8. 4. 19:11
지체들과 기도제목을 나누거나 교제를 할 때 솔직하게 연약함과
부족함을 나누는 편이다.
잘 살지 못하면서 잘사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이것만해도 훌륭하다 생각했다.
나쁘지는 않으나 좋지는 않다.
어느 책에서 봤듯이..
진실함이 없는 솔직함은..
삶이 뒷받침되지 않은 솔직함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단순히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옳다고 믿고 그것대로 사는 바를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솔직함과 정직의 차이라고 해도 될까?
솔직함을 넘어 진실과 정직함으로 나아가자.
삶의 본보기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