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처치 논박
Against Mega Church
by 신광은, 박삼종
1. 들어가는 말
아,
메가 처치(Mega Church)..
오늘날 교회의 문제들을 지적하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다. 하지만 메가 처치를 문제 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이렇게 말한다. 메가 처치가 문제가 아니라, 목사들의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교회가 바알주의, 맘몬주의, 성장주의, 영웅주의, 세속주의, 엘리트주의 어쩌고 저쩌고, 기타 등등, 이런 것들에 물들어서 문제지 메가 처치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교회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도리어 교회가 크면 복음 전파나 사회 사업 등에서 힘 있고 효과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장점도 많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리고 또 말한다. 물론 교회가 커지다보면 몇 가지 문제점들이 생기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교회의 규모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메가 처치 현상은 그리 간단히 말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 현상은 교회의 무능력, 부패와 타락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메가 처치가 현대 기독교의 모든 잘못의 원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메가 처치 현상은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의 세속주의, 부패, 타락 등의 모든 문제 한 복판에 존재하고 있다. 교회의 무능력과 타락으로 말미암아 메가 처치 현상이 생겼으며, 다시 메가 처치는 그러한 교회의 무능력과 부패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분명히 메가 처치는 교회의 침체 과정에서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신랄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메가 처치에 대해서만큼은 조용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러니 교회 개혁이니 갱신이니 말들은 무성하지만 정작 가장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간과한 체 변죽만 울리고 있다.
메가 처치 현상은 현대 교회에 주어진 도전이요, 과제다. 각 시대마다 주어진 신학적, 신앙적 과제들이 있다. 가령 사도시대에는 유대주의의 도전이 있었고, 1-3세기에는 영지주의와 여러 이단들의 도전이 있었으며, 또 로마 제국의 핍박이라는 도전이 있었다. 4세기 이후의 교회는 콘스탄틴주의의 도전을 받았으며, 16세기에는 교회의 타락과 맞서 싸워야 했고, 19세기에는 현대주의라는 도전이 있었다. 또 20세기 중반부터는 탈현대주의라는 이름의 도전과 맞서 교회는 분투하고 있다. 이처럼 각 시대마다 도전과 과제가 다른데, 21세기 초두의 한국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는 다름 아닌 메가 처치 현상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교회의 싸이즈, 곧 규모의 문제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메가 처치라는 새로운 현상
메가 처치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메가 처치가 2000년 교회의 역사 가운데 대단히 새로운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전에도 상당한 규모의 중대형 교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이런 종류의 메가 처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혹 일부 신학자나 목회자가 초대교회나 기타 시대의 교회에서 메가 처치의 전범을 찾으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시도다. 이것은 오늘날의 상식이나 관점, 생각을 옛날에다 뒤집어 씌워서 바라보는 행태다. 메가 처치 현상은 드물게나마 역사상 존재해 왔던 현상이 아니라 20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메가 처치는 전혀 새로운 교회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새롭다는 것인가?
과거의 교회와 20세기 이후의 메가 처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장의 한계(Growth Limitation)’의 문제다. 과거의 교회는 아무리 성장해도 어쩔 수 없는 ‘성장의 한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성장의 한계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함께 작동함으로 정해졌다. 가령 교구의 크기는 교회 성장의 절대적 한계 중 하나였다. 500명이 사는 마을에 세워진 교회는 절대로 500명을 넘지 못했으며, 대도시의 교구의 경우도 교회의 크기는 그 교구의 크기를 넘지 못했다는 말이다. 설령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또 교회의 성장의 한계를 정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였다. 가령 예배당은 목사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 또 설교자의 음성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넘기가 어려웠다. 19세기의 기술혁명이 이러한 인간 신체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기까지 메가 처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기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 교회는 어쩔 수 없는 성장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장의 한계는 사라졌다. 하나의 지역 교회(local church)가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어떠한 한계나 장애물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론상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지역 교회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메가 처치 현상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단순히 수 만 명이 넘는 몇몇 초대형 교회만을 가리켜 하는 말이 아니다. 메가 처치 현상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왜냐? 오늘날 모든 교회는 무한한 성장이 가능한 상황(situation) 가운데 있으며, 또 무한한 성장을 가능한 조건(condition)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수단(means)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교회는 무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무한 성장을 향한 모든 교회의 추구와 이 거대한 흐름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메가 처치 현상이다.
오늘날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는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다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우리나라의 수십, 수백 여 개의 교회들 중에서 성장의 한계를 말하는 교회는 단 한 교회도 없었다. 정말이다! 성장이 잘 안 된다고 말하는 교회는 많았다.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 더 많았다. 그러나 교회가 어디까지만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교회는 단 한 교회도 없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모든 교회는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교회성장학적 전제를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복음의 능력이라면, 성령의 역사라면, 구령의 충만한 열정이라면, 지역교회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교회 성장학자들은 교회성장의 한계를 마귀의 역사라고까지 말한다. 이제 성장의 한계는 돌파하고, 극복해야 하는 표적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노골적으로 무한 성장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대부분의 교회들은 성장만 말하고, 성장의 한계는 말하지 않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교회가 성장은 말하되, 성장의 한계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가 사실상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성장의 한계를 말하지 않는다면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전 세계 50대 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 세계10대 교회 중 5개가 한국에 있는 교회다. 세계 최대의 교회도 한국에 있고,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도 다 한국에 있는 교회다. 한 교회의 숫자가 대전시 전체 인구의 절반이 되는 교회도 있다. 참으로 이러한 현상은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한 번도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메가 처치 현상을 오늘날 한국 교회가 당면한 과제로 보는 이유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과제다. 교회성장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교회가 교회의 규모 자체를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인 주된 논의 과제로 삼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이 일을 해야 한다. 교회의 규모 자체를 중요한 신학적 논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가장 시급하고도 심각하게 논의하고 토론해야 하는 신학적 주제는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 구원론이 아니라 교회론이요, 교회론 중에서도 교회의 싸이즈, 곧 규모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현대 교회에서 바로 이 메가 처치 현상만큼 강력하고도 실제적인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두 얼굴의 밀라노 칙령
여기서 잠깐 AD 313년의 밀라노 칙령을 회상해보자. 밀라노 칙령의 반포는 정말로 뜻밖의 일이었다. 물론 3세기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어느 마을의 경우는 100%가 복음화었다고 할 정도였다. 로마 귀족과 원로원, 군인, 그리고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가족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그리스도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기독교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의 입지는 볼품없었다. 기독교는 여전히 신앙의 자유가 없었으며, 사회적인 지위도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보잘 것 없었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300년 가까이 지속적인 박해를 받아왔다. 네로 황제 때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밀라노 칙령이 반포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박해가 계속 이어졌던 것도 아니고, 제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박해라는 상황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특히 마지막 박해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가장 철저하고, 살벌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이 때문에 밀라노 칙령이 예상치 못했던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마지막 박해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의 박해는 대략 303년부터 311년까지 약 8년 정도 계속되었다. 303년 한 해 동안 세 가지 기독교 박해 칙령이 반포되었는데, 점차 그 내용이 가혹해졌다. 성서는 불태워지고, 예배당도 파괴되고,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고문을 받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배교자들이 나왔다. 304년, 또 다른 로마 황제 중 한 사람인 막시미아누스는 최악의 칙령을 내렸다. 이 칙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공직에서 박탈되고, 시민권은 몰수당했다. 그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처형하게 했다. 308년에도 또 하나의 칙령이 선포되었다. 이 칙령에는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음식에 제사로 썼던 술을 뿌리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굶어죽든지, 아니면 배교하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잔혹한 기독교 박해가 갑자기 끝났다. 먼저 311년에 갈레리우스가 박해를 중지시키는 관용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이러한 포고령에도 불구하고 박해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제국 곳곳마다 박해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313년 밀라노 칙령이 발표된 것이다. 참으로 이것은 놀라운 대사건이었다. 제국 내에서 박해는 즉시 중단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었다. 제국은 빼앗긴 교회의 예배당을 직접 사서 교회에 되돌려주었다. 투옥되었던 신자들은 풀려났다. 어느 곳에서든 공적인 신앙고백과 예배, 전도가 허용되었다. 기독교는 단순히 허용 받은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는 제국 법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공인 종교가 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이 기독교의 열 세 번째 사도로 추앙을 받는 동시에 교회에 대한 특별한 보호자로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 특혜를 받게 된 것이다. 성직자들은 제국의 공무원으로서의 직위를 보장받았으며, 각종 세금의 혜택을 받았다. 참으로 대사건이요, 대혁명이다!
이러한 뜻밖의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까지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교회는 이 뜻밖의 밀라노 칙령을 어떻게 보았어야 했을까? 당시 교회는 밀라노 칙령을 이방 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요, 제국과 황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요, 이교 철학과 종교에 대한 복음의 위대한 승리로 보며 경축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열광했고, 온갖 미사여구로 황제를 칭송했다. 교회는 그를 열 세 번째 사도요,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으로 숭앙했다. 로마 제국을 향한 찬미도 더해졌다. 이제 로마 제국은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입은 지상 왕국이 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모형인 것으로 덧칠해졌다. 역사학자들은 바로 이것이 콘스탄티누스가 기대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제국 내 모든 교회와 주교, 신자들은 일제히 황제와 제국에게 기꺼이 충성을 맹세했다. 이것은 초대교회 300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황제와 제국이 제공하는 모든 특권와 시혜를 마음껏 누렸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로 얻은 전리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교회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
확실히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의 위대한 승리다.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의 도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무장봉기, 유대인들의 반란, 그 외 기타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략들을 거뜬히 막아냈던 로마 제국이었다. 그러한 로마제국이, 로마의 지식인 켈수스가 무식쟁이들이요, 천한 것들이라고 멸시했던 그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황제는 끝내 그리스도 앞에 굴복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승리였으며 백 번 천 번 경축할 일이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은 위대한 승리임과 동시에 교회의 가장 끔찍한 패배이기도 했다. 초대 교회 300년간 이어져왔던 초대교회의 위대한 생명력과 영향력은 밀라노 칙령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게 된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어 침례/세례를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과 특혜를 받는 성직자가 되는 길을 밟았다. 교회당은 크고 빠르고 급속하게 제국 전역에 세워졌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맨 땅에는 웅대한 기독교 도시, 곧 콘스탄티노플을 세워졌으며, 제국의 수도로 정해졌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이자, 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만들었다. 이제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것은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 되었다. 300년 동안 박해를 받아왔던 기독교는 5세기가 넘어서면서 박해자가 되었다. 점차로 교회는 힘을 얻었으나 이상하게도 교회는 점점 더 어두운 나락으로 한없이 한없이 추락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밀라노 칙령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의 엄청난 패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밀라노 칙령에 어떻게 반응했어야 했단 말인가? 밀라노 칙령을 거부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그리스도와 복음의 위대한 승리를 경축하지 말았어야 했단 말인가? 아니다. 위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왜 거부해야 하겠는가? 왜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하지 말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교회는 신중했어야 했다. 제국의 관용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별했어야 했다. 제국으로부터 받는 특혜가 박해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무서운 사단의 훼방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교회를 향한 황제의 겸양과 제국의 공손함이 콜로세움의 사자 이빨보다 더 무섭고 간교한 것으로 화할 수도 있음을 간파해 냈어야 했다.
만일 교회가 그랬더라면, 조금만 더 신중하고, 조금만 더 깨어 있었더라면, 교회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의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국가 권력이 제공하는 특권에 대해서는 경계를 했을 것이다. 만일 교회가 조금만 더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교회는 전도와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린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교회로 몰려오는 새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자의 삶을 살도록 교육하는 과정들을 더욱 엄격히 관리했을 것이다. 교회가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배교자를 교회가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교회 안에서 논쟁이 벌어졌을 때 도나투스주의자들은 논쟁을 해결해 달라고 황제에게 위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제국으로부터 법적 직위, 권리, 인장과 휘장, 상징, 의전 등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신중했을 것이다. 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로 아타나시우스측과 아리우스측이 갈라졌을 때, 그래서 황제가 자기 돈을 들여 니케아로 세계 교회의 주교들을 불러 모아 최초의 세계 공의회가 개최했을 때, 교회는 황제가 그 회의의 주관자로 앉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작성된 니케아의 신조가 제국과 황제의 이름으로 공포되는 것에 대해서 신중히 고려했을 것이다. 또 만일 교회가 조금만 더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와 싸우려고 로마로 진군하던 중 밀비안 다리 근처에서 환상 중에, “이 상징으로 네가 정복할 것이다.”(Hoc signo vinces)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을 때, 교회는 그 환상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 만일 교회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나 리키니우스와 같은 정적들과 싸우기 위해서 방패마다 십자가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을 들고, 적들을 살상하는 기이한 일을 제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어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죽이는 살육의 신, 전쟁의 신이 되었단 말인가?
논의의 장으로 초대하며..
물론 말하기는 쉽다. “그때 교회가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하지만 누군들 그때 그 상황 속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우리라도 그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행동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한 사람의 잘못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의도가 선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잘못은 역사가 흐르면서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전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지 않는가?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도, 그것이 시작된 당초의 동기는 훌륭한 것이었다.” 역사의 유익은 한 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메가 처치 현상은 여러 모로 밀라노 칙령 이후의 교회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밀라노 칙령을 거울 삼아 메가 처치 현상에 대해서 교회가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분별있고, 조금 더 사려깊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메가 처치 현상은 누군가가 의도해서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다. 목회자들은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이 기이한 현상이 점점 우리 눈앞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현상은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비난할 성질의 것도 못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악한 의도로 만든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모두가 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옳은 일이 되지는 않는다. 메가 처치 현상이 누군가 악한 의도와 불순한 영으로 교회 안에 유포시킨 그런 현상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 현상에 대해서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과연 이 일이 옳은가, 그른가? 성서적으로 합당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되는가? 이것이 바울이 말했던 영적 전쟁의 실상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세상 주관자들과 어둠의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메가 처치 현상에 대해서 가져야 할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운 점이 있다. 메가 처치 현상은 2000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대단히 새로운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현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적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아직 배움이 없다. 66권 신구약 전체 성서도,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사도들도, 오리겐이나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도, 프란시스나 도미니크 같은 수사들도,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도, 웨슬리나 에드워드 같은 부흥운동가들도 메가 처치 현상에 대해서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 현상을 도외시할 수 없다. 메가 처치 현상을 무조건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요,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실이라고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과거 밀라노 칙령에 대한 교회의 섣부른 판단을 반복하는 짓이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면도 있다. 우리는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 기만성, 유혹 등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