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입학예배 때였던가? 개강예배 때였던가?
하여튼 고용수 목사님께서 마지막 축도를 하실 때...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손을 위로 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들어 마치 십자가에 달린 모습으로 축도하시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런데 그 때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물론 본인은 그것을 의도하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축도 할 때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취함으로 다시한번 나의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길임을 매번 기억하길 원한다...
하지만 축복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희생한다고 내가 십자가를 진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아무런 자신의 희생과 섬김 없이 그냥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에게 다 해주시기를 원한다.
예배를 드릴 때...말씀을 전할 때...기도할 때...성만찬을 집례할 때...찬양을 인도할 때...축도할 때...
이 모든 것에 나의 희생과 사랑과 섬김이 없다면....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그것에는 생명이 없음을...
매번 양 손을 들어 십자가를 그리며 축도할 때 기억하려 한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 작성자
- 황신연
- 작성일
- 2004.04.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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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져야 할...
십. 자. 가. 는...
무엇입니까...?'
'주님...
부디...
제가 십자가를 져야 할 그 때에...
그것을 부인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기억해야 할...
- 작성자
- 황신연
- 작성일
- 2004.03.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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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사람들을 섬기면서...
내가 잊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에 관한 성경구절들을 적어본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눅 17장 7-10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장 2-3절)
나의 헌신...하나님을 향한 섬김...
물론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실 것이지만...
나는 무익한 종임을...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임을 잊지말기...
또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자원함으로...
더러운 이익이 아니라 즐거운 뜻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이 됨으로 사는 것...
잊지말자...
묘비명
- 작성자
- 황신연
- 작성일
- 2004.03.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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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었던 황신연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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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홀파 예배 시간에 박솔잎 선교사님께서 자신의 묘비명을 적어보라고 했을 때 적었던 글이었고...
어제 교수님께서 출석을 부르시면서 역시 자신이 죽을 때 사람들이 불러줬으면 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실 때 대답한 말이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
이것은 내가 세례요한을 존경하게 되면서 가진 생각이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철저히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였고...
예수님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자신의 입지가 좁혀져 갈 때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무엇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표지판으로써 그 존재의 목적이 그 자신에게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가리키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목적지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 표지판에 잠시 눈이 머무르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그 주목은 그것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아...얼마나 큰 축복이자 영광이 될 것인가...
부족한 내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는 여정에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주님...저 꼭...그렇게 사용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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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의 의식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몇일 전부터 이 일에 대해서 들었지만...
정치에 대한 실망과 염증으로 무관심으로 남의 일 이야기 하듯이 일관했었다.
오늘 다른 이들은 이렇다 저렇다 적절한 근거를 들어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이번 사건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와 정치에 대해서 책임있는 크리스챤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
대한민국 땅에서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기독청년으로서의 역사의식의 부재인 것 같다.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는 총회에서 침묵하는 그 모습...
군사정권의 독재에 아무 말도 못하던 그 모습...
이 모습이 내가 될까 두렵다.
아니 벌써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밤...
학사이자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의 기도가 떠오른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하여 영원한 기업을 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스9:6-15)
회개다.
거룩함, 행함이 없는 믿음만 가진 자신의 민족에 중보이다.
아니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품고 부르짖은 애통함이다.
그 이후 철저히 부패하여 이방인과 통혼했던 레위자손들을 개혁시키는 그의 행함...
난 어찌할까?
일치하지 않는다...
게시판 제목은 힘을 다해인데...
계속 내가 올리는 글은 주로 생각과 마음에 관련된 부분인 것 같다.
이렇게도 힘을 다해 사는 행함의 삶은 힘든 것일까?
이렇게 나를 합리화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생각하는 것도 행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람도 행동가와 이론가가 있듯이 이것은 은사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나는 행동하기 보다는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사실 많은 책에서보면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부지런히 내 마음을 살피며 생각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어쩌면 지금은 부지런히 생각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진정으로 행해야 할 때 실수하지 않고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한 고민들을 해나가는 시기...
하지만 믿음이 행함, 열매와 분리될 수 없듯이...
생각과 말 또한 행동, 삶과 일치되어야 한다...
신연아! 무엇에 힘을 다할래?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오리엔테이션 기간이었다.
특히 어제부터 오늘까지는 학우회 주관으로 동신기도원엘 다녀왔다.
조별시간과 간단한 특강 그리고 레크레이션, 조별발표회등 간만에 눈물나게 웃었던 것 같다.
살아온 모습도 다르고 또 앞으로의 비전도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는 동역자들을 만나서 좋았던 것 같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만져주셨다.
오늘 아침에 4개조로 나뉘어서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러말씀을 하시던 중...
목회자와 평신도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평신도들이 목회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모시면 목회자는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더 낮아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즉 양들이 권위를 부여하면 목회자는 더 낮아지고 그러면 더 권위를 주고 그러면 더 낮아져야 한다는 것...
왜 그 때 눈물이 핑 돌았을까?
비록 이야기지만 그렇게 철저히 섬기는 목회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렇게 섬기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어쩌면 그런 섬기는 리더쉽이 이 시대에 너무나도 필요하고 또 그것을 보기를 너무나도 사모하는 것일지도...
부디 저를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그런 사람 만들어 달라는 내 깊은 소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만지심은 계속되었다...
대학시절 목회에 대해 막연한 의무감이 있었을 무렵 다시한번 나를 목회의 길로 부르셨던 요한복음 21장 말씀으로 다시한번 나를 감격케 하셨다.
필레오(우정)으로 밖에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베드로의 작지만 진실한 사랑의 고백에 친히 낮아지셔서 그럼 그 사랑을 달라는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말씀과 성찬 가운데 계속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부디...
이 마음...
이 첫마음...
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순간순간 가운데...
잊혀지지 않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