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Transforming Friendship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기도를 엄격한 훈련이나 수행해야 할 과제가 아닌 우정과 관계적인 차원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기도는 신학과 윤리의 문제, 즉 사고와 행함의 문제이다. 우리의 믿는 바와 행동방식은 기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알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성격에 따라 기도의 성격도 결정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죄렌 키에르케고르
우리는 정보를 하나님께 제공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하나님이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양 말이다. 우리는 대신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한다. 그리하여 기도의 사람으로서 하난미과의 사귐 속에서 우리 자신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우리의 전 존재는 기도의 삶과 영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인간은 기도하면서 거의 간구하지 않는다. 배고픔은 인간에게 구걸을 가장 잘 가르쳐 준다. 자신의 마음속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면 당신은 더 자주 무릎을 꿇을 것이다. 자신의 필요를 안다면 당신에게 기도가 그리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알라. 그러고 나서도 기도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한번 그렇게 해보라. -17세기의 한 필자
믿음이란 한마디로 기도이다. -마틴 루터
기도는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 일정한 규칙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것이다. 믿음이 행함에 의존할 때 믿음은 그 뿌리를 잃는다.
*기도의 초점은 기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우리는 '기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더 깊고 더 친밀한 관계를 탐험한다.
기도는 예수님의 마음과 영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에는 도움이 필요하다.
성경 안에서의 탐구. 금식. 침묵. 공동체. 영적지도.
기도의 장애물
우리의 상처와 기도. 기도와 활동주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 내면의 어두움을 두려워함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홀로됨(solitariness)으로 하는 그 무엇이다. -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우정이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하여 만나고 그런 후에 서로를 신뢰하기 위하여 작별하는 것.- 프랑스의 저술가 시몬 웨일.
'지나치게 감상적인' 관계는 절대로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사이의 유대를 성숙케 하기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아마 기도도 이런 식으로, 즉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의식과 더불어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있거나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의 성품이나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색다른 통찰을 얻는다. *하나님은 우리와 구별된 존재이시며,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면서 우리는 자신을 좀더 현실적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부재는 아이가 갖는 관계들이 단순한 소원성취가 아니라 더 큰 성숙을 추구하게 만들어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은 집으로 보내 오는 편지들을 통해서 새로운 통찰력을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의 부재는 그분의 성품과 생각에 댛나 우리의 좁은 관점을 초월하는 그분의 거룩하심과 타자성에 관해서 가르쳐준다. 존경과 경외심으로 거리를 두지 않는 한, 친밀함은 경멸을 낳는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잘 이해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부재가 필요하다.
우리의 소외,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의식, 우리의 어두움과 무지를 바로 하나님이 짊어지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즐거움을 알려주시려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체험 주엥서 가장 고통스러운, 하나님과 분리되는 체험 속으로 들어오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놀라운 역설 중 하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부재를 체험한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죄의식을 체험할 때, 기도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깊이 아는 것이다.
가난 그리고 하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그분의 임재를 가장 실제저긍로 만든다. 그와 마찬가지로 겸손한 마음과 가난한 영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가 하나인 곳에 이를 수 있다.
제7장 성령, 우리는 변화시키시는 친구
성령은 우리가 성부, 성자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제8장 예수 그리스도와의 우정
기도가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경험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신앙에만 유이랗게 발견되는 기도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느 ㄴ것이다.
두번째 새로운 요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다.
복종의 길.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기도의 열쇠이다.
믿음의 길.
순종의 길. 사랑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며...
당신의 길을 취하소서, 이는 당신의 길이 최선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비천한 채무자인 저를 늘이거나 줄이소서.
이는 단지 더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하여
제 가슴을 조율하는 것뿐입니다.
조지 허버트
조명하는 진리.
자유케하는 진리.
예수님의 이르믕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 자유롭게 예수님께 속한, 아니 예수님께만 속한 그리스도 안의 인격체가 된다. 이러한 소속감은 절망이라는 질병에 대한 강력한 처방이다.
인도해주는 진리.
은밀한 삶.
의뢰하는 삶.
겸손한 삶.
제10장 삼위일체 내의 우정
관상기도는 그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고, 그분의 사랑에 가까이 이끌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으르 의미한다. 이것은 다양한 기도 체험의 일부이다.
기도는 오히려 열린 마음, 믿음, 주목, 그리고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는 사랑의 문제이다. 이것이 기도에서 진보를 거두는 방법이다. 우리는 관성적인 삶을 진지하게 다루려고 수도원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만일 우리가 인격 자체를 하나님의 삶과 사랑에 맡긴다면, 바쁜 직장 생활에서나 어린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실직자로서 또는 삶의 어떤 정황 에서도 기도의 모든 깊이를 측량할 수 있다. 그것은 전저긍로 우리가 어떻게 내적인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관상하는 체험에서의 세가지 결론.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각들로 안내해 주는 기호와 욕구와 신비에 개방된다.
둘째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신비가 무한한 바다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변혁을 초래하는 신뢰.
중지될 수 있는 우정은 결코 우정이 아니다. -제롬
나는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우정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 12세기의 저술가 리보의 앨리드
기독교 신앙이 우정을 너무나 평가 절하 해 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주는 사랑을 보여 주라고 명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친구들을 가려서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레미 테일러 주교는 기독교 역사상 보기 드문, 영적 우정에 관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의 사랑은 온 세상을 향한 우정이다. 그리고 우정이 세상(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것인 때에, 기독교의 사랑은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건, 볼록 렌즈의 중시믕로 그 광선이 집중되는 햇빛처럼 미미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은 동방의 언덕을 오르는 태양의 얼굴처럼 확장되는 우정이다.
관상한다는 것은 그릿도 안의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요한복음15장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이유. 요17장
* 우리의 섬김이 예수님의 섬김처럼 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가 섬김의 핵심에 자리잡아야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섬기는 일에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심으로써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과정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달려 있으며,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아버지께 복종시키신 방식에 기초한다. 예수님의 순순하고 온전한 거룩하심을 통하여 제자들의 삶과 사역도 순수하고 온전해지는 것이다.
제12장 다양한 기도의 전통들
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 무아경의 기도
묵상한다는 것은 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대로 살기 위하여 우리의 이성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진리들을 숙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묵상은 하나님과 함께 또는 하나님 앞에서 나누는 대화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언어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다.
묵상은 이성이 생각과 감정을 동시에 의식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언어적이고 상징적인 대화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관상상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강렬하고 친밀하게 실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그분의 임재에 대한 순수한 의식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말과 생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무야경은 우리가 기도 중에 하나님과 나누는 우정의 진정한 정점이다. 무아경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우리 밖으로 취해지는 거을 의미하는 헬라어에서 직접 온 단어이다. 기도중에 무아경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밖으로 취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노력으로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의 능려긍로 산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삶의 전체가 하나님의 의해 통제됨으로써 무아경에 빠지는 것이다.
사랑, 희락, 화평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자비, 양선, 오래참음 =>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충성, 온유, 절제 => 자신을 아는 지식
제13장 기도의 공동체
모든 기도를 능가하는 기도는 "말하는 자가 진정 저 자신이 되게 하시고, 제가 말씀을 드리는 대상이 진정 당신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이다. - 루이스
기도는 아마추어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절대로 기도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것보다, 잘난체 하는 능률주의와 자신감에 넘친 프로정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모두 기도의 초보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마음의 치유에서의 기도. 야고보서에서 육신의 치유와 함께 죄를 고백하는 것과 사함을 받는 것 그리고 의인의 기도의 능력에 간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의 왜곡된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는지, 어떻게 그분이 우리 자신의 능력을 초월하여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은혜는, 기도할 때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변화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기도가 위험한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도하는 것은 적이 점령하고 있는 나라에서 지하 저항 운동에 가담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복음의 비치 어둠의 나라를 전복시키도록 싸운다.
제14장 함께하는 기도
기도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어거스틴 말했듯이 "절대자만이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물질주의적인 생활방식은 절대로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인간의 관계들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기 위한 선택이다.
이렇게 할 때 인간의 우정도 변화된다. 생떽쥐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분을 찾게 만든다.
*하나님은 관계이시다.
기독교 공동체는 단순한 인간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둔 신성한 실재다.
삼위일체는 죽은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신비이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교제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랑의 공동체에 가까워질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사랑이 진실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인격체가 필요하다. 사랑은 보호받기 위하여, 인격체들의 삼위일체를 요구한다....그러므로 사랑의 공유는 세 인격체 미만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 성 빅터의 리처드
만일 삼위일체가 모든 실재와 사고의 유일한 근원임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아무곳으로도 인도하지 않는 길-우리 존재의 해체와 영적인 죽음에 우리를 내맡기게 된다...삼위일체와 지옥 사이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 동방교회의 신학자 블라디미르 로스키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는 것
두 가지 믿음이 함께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체화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믿음이고 둘재는 하나님이 교회 즉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함께 모인 하나님의 선택받은 회중을 불러 내셨다는 것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언급하며, 후자는 실제로 그런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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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사귐의 기도라는 책을 읽고 기도에 대한 많은 도전을 받았었는데...
저자가 참 많이 인용했던 책이어서 한 번 읽어보려고 생각했었떤 책이다.
이책의 저자는 기도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우정, 하나님과의 우정, 다른 사람들과의 우정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우정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하나님은 관계'라는 진술은 이전에 예배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생각하게 되었던 '기독교는 관계'라는 진술과 함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사실 성경을 두가지로 압축한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것으로 되는데 여기에서 관계는 중심이 된다.
특히 번역자가 저자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내의 얼굴은 너희 믿음의 이력서다."라고 말한 역자의 서문이 참 인상 깊다.
요약하려고 했으나 너무 내용이 좋아서 그냥 다 써버렸다.
끈기가 있는 사람들이 읽고 은혜를 받겠지...^^;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