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지 않는다고 내 생이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풍성함은 우리의 고난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분의 풍성함으로 나의 궁핍한 삶을 채우실 것이라 말씀하신다.(103쪽)
"오늘 이밤에 우리 모두 오른손을 들고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시다. '하나님, 저 좀 그만 때리세요!"
나는 저들의 고통과 슬픔을 해결할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하나님 앞에 함께 하소연하고 부르짖는 믿음의 선배로 그곳에 서 있었다.(126쪽)
그들이 나를 찾아오는 이유를 나는 안다. 내 말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나를 보고 싶어서 온다. 고통의 이유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고통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오는 것이다. 자기 삶이 특이한 게 아니라 평범한 또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온다.(134쪽)
고난당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너무도 불합리해 보이기에 하나님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불순종입니다. 믿음은 신뢰, 이해, 순종을 총괄하는 말입니다. 의심은 그 중 이해에 해당합니다. 믿음에는 의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불신앙은 무관심으로서,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거나 무조건 의심하는 절대적 회의주의입니다. 신자에게 의심은 성장을 위한 과정이지만, 불신앙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입니다."(140쪽)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원망과 원수에 대한 적대감을 하나님께 모두 토로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다." 월터 브루그만 (145쪽)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말대로 "하나님의 전 존재가 고통 속에 거하셨다.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존재 속에 있었다."
눈물은 힘으로도,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능히 깨뜨린다. 아내의 눈물이 완고한 남편의 교만을 깨뜨린다. 목사의 눈물이 아픔에 무감각한 시대의 무관심을 깨뜨린다. (158쪽)
십자가는 나를 위해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의 아픔에 동참하신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다. (160쪽)
사랑하기 때문에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외아들'을 주셨다. 이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160쪽)
찾아가 보는 것, 그것이 먼저다. 병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찾아가 들여다보는게 먼저다. 분명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어린 방문이다.(163쪽)
고난당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와 함께 있어 줄 친구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다.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연약한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가 버림받고 잊혀졌다는 고립감에 빠지지 않도록, 함께함으로써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167쪽)
고통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중에도 겪을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겪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때문에 겪는 일일 수도 있다.
신학자 올브라이트의 말처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형통해진다는 믿음처럼 진리에서 멀어진 믿음은 없다."
이 땅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모두 얻는 삶이 축복이 아니다. 잃음과 얻음을 반복하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축복이다. (174쪽)
우리가 가장 자구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는 '선택의 순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뜻은 어느 직장으로 가든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만나든지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177쪽)
폴 투르니에가 말한대로, 고난을 이기는 과정이 축복이지 고난 자체가 축복은 아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은,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179쪽)
고난의 신비는 고난의 끝에서 우리가 그렇게 사모하던 그분을 대면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181쪽)
광야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능력과 존귀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반면에 인간의 완악함과 교만, 불만족과 연약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광야는 이러한 두 가지 실재가 벌거벗은 채 만나는 곳이다. 살아 있고 먹고 있으면서도 좀더 좋은 것을 달라고 불평하는 인간과, 인간의 불평에 때로는 분노하고 벌을 주시면서도 한결같은 은혜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만난다. (186쪽)
그러나 삶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믿음은 하나님을 더욱 또렷하게 인식하게 한다.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란다.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믿음이 성장하는 출발점이다. 모든 것에 주도권을 갖고 사는 한, 믿음이 자라기는 어렵다. 그저 자신의 관리 능력만 자랄 뿐이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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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장로교회 청년부를 섬길 때 특새 강사로 은혜를 받았던 김병년 목사님의 책.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내가 꿈꾸지 않는다고 내 인생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내 마음에 깊이 남겨졌다. 나는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넘어선 이상을 꿈꾸는 편이기 때문이다. 지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뭔가 뒤쳐지는 것 같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마음 속에 평안을 얻게 하였다.
오늘날 강단의 메세지는 고통을 부인하며 성공과 축복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자신의 삶에 실제로 고통이 다가오면 어찌할바를 모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는 실제 고통을 통과하면서 갖게 된 정직한 질문과 고백을 통해 고통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진정한 축복이란 '잃음과 얻음을 반복하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목회란 어떤 의미에서는 성도들의 고통을 함께 직면하고, 함께 있어주며, 함께 걸어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그리고 성도들에게 난 당신이 좋아라고 서로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리라.